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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그래픽] 비어 있는 벽에 흐름을 만드는 일ㅡ진주 시립 이성자미술관 벽면 시트 작업기

김수현··수정됨 2026.07.21

[전시그래픽] 비어 있는 벽에 흐름을 만드는 일ㅡ진주 시립 이성자미술관 벽면 시트 작업기


이번 작업은 미술관에 들어갈 사인그래픽 작업이였습니다.
비어 있는 흰 벽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이미 많은 질문을 품고 있었습니다.
타이틀은 어디에서 시작해야 자연스러운지, 설명문은 어느 정도 여백을 가져야 답답하지 않은지,
작품과 캡션의 거리는 얼마나 가까워야 하고 또 얼마나 떨어져 있어야 하는 지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화면 안에서 먼저 맞춘 균형

가장 먼저 한 일은 텍스트를 화면 안에서 정리하는 작업이었습니다.
벽에 올라갈 문장이라고 해서 단순히 내용만 배치하면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타이틀은 멀리서도 바로 읽혀야 했고, 설명문은 가까이 다가갔을 때 부담 없이 읽혀야 했으며,
캡션은 작품 옆에서 정보를 보완하되 필요 이상으로 튀어 보이지 않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디자인 단계에서는 서체와 글자의 크기만 보는 것이 아니라, 글자 하나의 높이, 자간, 줄 수, 문단 폭, 제목과 본문 사이 간격까지 함께 보며 조정했습니다.
전체 밀도가 조금만 빽빽해도 답답해 보였고, 반대로 너무 느슨하면 화면 안에서는 정리되어 보여도 막상 벽에 올라갔을 때 힘이 빠질 수 있었습니다.
전시장 텍스트는 손에 들고 읽는 인쇄물이 아니라 서서 보고 지나가며 읽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한눈에 구조가 정리되어 보이는지가 특히 중요했습니다.
이번 작업에서 디자인은 단순히 보기 좋게 정리하는 일보다는, 실제 공간에서 텍스트가 어떤 밀도로 읽혀야 하는지를 조율하는 과정에 가까웠습니다.

스크린샷 2026-03-27 152946.png

현장에서 다시 확인한 비율

화면 안에서 정리한 구성은 현장에서 다시 확인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시장 벽은 평면처럼 보여도 막상 서서 보면 넓이의 체감이 다르고, 천장 층고와 조명, 작품이 놓이는 위치에 따라 여백의 느낌도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마스킹테이프로 먼저 위치를 잡아보며 실제 비율을 다시 확인화는 과정을 거칩니다.

화면 안에서 정리돼 보이던 배치도 실제 벽에 적용하면 인상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수치상으로는 맞는데도 어딘가 답답해 보이거나, 반대로 몇 센티미터만 이동했을 뿐인데 훨씬 안정적으로 보이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제목과 설명문 사이 간격, 벽면 안에서 텍스트가 놓이는 위치, 주변 요소들과의 거리 같은 것들이 미세하게 달라지는 것만으로도 전체 인상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결국 현장은 디자인 데이터를 그대로 옮기는 자리가 아니라, 화면 안에서 잡아둔 균형이 실제 공간에서도 자연스럽게 읽히는지 다시 확인하고 다듬는 자리였습니다.

Untitled-1.png

*학예사님이 직접 체크해주셨던 선호하는 부착위치


당연해 보이는 장면을 만들기까지

모든 그래픽이 올라가고 작품과 캡션이 제자리를 찾은 뒤 공간을 다시 보았을 때,
비어 있던 벽면도 전시 흐름 안에서 자연스럽게 읽히기 시작했습니다.

전시 그래픽은 잘되었을수록 티가 덜 납니다. 관람객은 제목의 위치나 캡션의 간격을 하나하나 의식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어색하지 않고, 과하지 않고, 필요한 만큼만 보이게 맞추는 일이 가장 오래 걸리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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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진주 시립 이성자미술관 작업은 단순히 글자를 붙이는 일이 아니라, 비어 있는 벽을 전시의 일부로 바꾸는 과정이었습니다.
전시는 큰 구조로 완성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지막 인상을 만드는 것은 결국 이런 작은 간격과 조정이라는 생각이 오래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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