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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기획] 외우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 부산수학문화관 〈찾아라! 숫자의 기원〉
문병석··수정됨 2026.07.16

숫자를 '갖고 노는 것'으로 만들기
그래서 게임으로 풀었습니다
이번 콘텐츠의 주제는 '숫자 문명사'였습니다. 고대 이집트, 중국, 로마가 저마다 어떤 숫자를 썼고, 오늘날 우리가 쓰는 아라비아 숫자가 어떻게 자리 잡았는지를 다루는 체험물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아이들이 듣자마자 눈을 반짝일 주제는 아닙니다. 자칫하면 벽에 설명문을 잔뜩 붙여두고 "읽어 보세요" 하는, 교과서를 옮겨놓은 듯한 전시가 되기 쉬운 주제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정한 건, 이 콘텐츠를 '읽는 것'이 아니라 '갖고 노는 것'으로 만들자는 방향이었습니다.

낯선 옛날 숫자 기호를 외우게 하는 대신, 직접 맞춰보게 했습니다. '바꾸어라! 숫자 기호!'에서는 화면 옆 힌트 표를 보고, 이집트·중국·로마의 기호가 어떤 값인지 추리해 아라비아 숫자로 바꿔 입력합니다.
'뒤집어라! 숫자 기호!'에서는 세 문명의 기호가 뒤섞인 카드를 기억했다가 짝을 찾고, 맞힌 카드가 우리가 아는 숫자로 바뀌는 걸 확인합니다.
정보를 눈으로 읽으면 돌아서면 잊지만, 손으로 직접 풀어본 건 오래 남는다고 믿었습니다. 게다가 제한 시간까지 붙으면, '공부'는 어느새 '게임'이 됩니다.
다 보여주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았습니다
기획을 하다 보면, 공들여 만든 걸 관람객이 하나도 빠짐없이 다 봐줬으면 하는 욕심이 생깁니다. 이집트도 보고, 중국도 보고, 로마도 보고 — 전부 차례로 거치게 동선을 짜고 싶어지죠.
그런데 이번에는 그 마음을 일부러 내려놓았습니다. 관람객이 보고 싶은 문명을 직접 고르게 하고, 굳이 나머지를 다 보지 않아도 바로 게임으로 넘어갈 수 있는 버튼을 따로 두었습니다.

학습 콘텐츠인데 다 안 봐도 되게 만드는 게 맞나,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하지만 안 보고 싶은 걸 억지로 보게 하는 순간, 흥미는 사라진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문명만 깊이 보고 신나게 게임으로 달려가는 아이가, 셋을 의무적으로 훑고 지치는 아이보다 더 많은 걸 가져간다고 믿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영상에 맡겼습니다
게임으로 풀기 좋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었습니다. '기호를 직접 바꿔보기'는 손으로 만져야 제맛이지만, '왜 사람은 숫자를 만들었나' 같은 이야기는 게임으로 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 몫은 짧은 영상에 맡겼습니다. 아주 먼 옛날 뼈에 눈금을 긋던 사람들, 돌멩이가 너무 많이 쌓여 와르르 무너지는 장면, 그러다 여러 문명이 저마다 숫자를 만들어내는 흐름을 애니메이션으로 가볍게 보여주는 식입니다.
이 영상에서 사실 진짜 주인공은 '0'이었습니다. 6~7세기 인도에서 0이 등장하면서, 0부터 9까지 단 열 개의 숫자만으로 아무리 큰 수도 적을 수 있게 된 순간 — 이게 이 콘텐츠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라고 봤습니다.
그래서 2052라는 숫자를 예로 들어, 앞의 2는 2000이고 뒤의 2는 2라는 걸 보여줬습니다. 같은 '2'라도 자리에 따라 값이 달라진다는, 말로는 어려운 개념을 눈으로 한 번에 느끼게 하고 싶었습니다.
마지막은 '내 생일'이었습니다
아무리 재미있게 풀어도, 옛날 숫자는 끝내 '남의 이야기'로 남기 쉽습니다. 그래서 콘텐츠의 마지막에는, 그 숫자를 기어이 '내 것'으로 만드는 장치를 두었습니다.
가장 흥미로웠던 문명을 하나 고른 뒤, 자기 생일을 그 문명의 숫자로 직접 적어보는 단계입니다. 로마 숫자를 골랐다면, 화면의 점선을 손으로 따라 그리며 'MMX·X·X' 같은 자기만의 생일을 완성하게 됩니다.
남의 문명, 낯선 기호였던 것이 이 순간 '내 생일'이 됩니다. 지식이 나와 상관없는 정보로 끝나지 않고, 작게라도 내 이야기가 되는 순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돌아보며
돌아보면 이 콘텐츠가 정말 하고 싶었던 건, 숫자 문명사를 빠짐없이 가르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이 '숫자라는 게 이렇게 재미있을 수도 있구나'를 단 한 번 느끼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며칠 지나면 어떤 기호가 몇이었는지는 잊어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자기 생일을 다양한 문명의 숫자로 더듬더듬 따라 그리던 그 잠깐이 즐거웠다면, 숫자는 더 이상 어렵기만 한 무언가가 아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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