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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마치 토이스토리?
정호종··수정됨 2026.07.20
사람 눈에 반응하는 전광판 개발기
한 줄 요약 — 보는 사람과 주변 환경에 맞춰 밝기를 스스로 조절하는 전원 절감형 전광판을 개발하면서, 기술을 만드는 일 못지않게 "정말 전기를 아낀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던 과정을 정리한 기록입니다.
영화 토이스토리의 장난감들은 사람이 보지 않을 때 움직입니다. 이 전광판은 반대입니다. 사람이 볼 때만 열심히 빛나고, 아무도 보지 않으면 조용히 쉽니다.
길을 걷다 전광판을 유심히 본 적이 있으신가요. 한낮이든 한밤이든, 바로 앞에서 보든 길 건너에서 보든, 전광판은 늘 같은 밝기로 빛나고 있습니다. 이 글은 그 밝기를 상황에 맞게 줄여 보려던 시도와, 그 과정에서 현장에서 만난 세 가지 벽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 어떻게 시작했나 — 항상 최대 밝기로 켜져 있는 전광판
최근 업무에서 LED 전광판의 소비전력을 줄이는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습니다.
LED 전광판이 쓰는 전기의 대부분은 빛을 내는 데 들어갑니다. 그런데 보는 사람이 없는 새벽에도, 조금만 밝혀도 충분한 밤에도, 전광판은 가장 밝은 상태를 유지합니다. 필요 이상으로 빛을 내는 만큼 전기가 새고 있는 거죠.
여기서 출발했습니다. "보는 사람에게 잘 보이는 선은 지키면서, 그 이상의 빛만 줄일 수 없을까?"
2. 아이디어 — 사람 눈은 상황마다 다르게 본다
비유하면 이렇습니다.
집 안의 모든 방에 하루 종일 불을 켜 두는 집이 있습니다.
사람이 있는 방만 밝히고, 빈 방의 불은 줄이는 집도 있습니다.
두 집의 거주자가 느끼는 밝기는 같지만, 전기 요금은 다릅니다.전광판도 마찬가지입니다. 화면 전체를 늘 최대로 밝히는 대신, 보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곳에, 필요로 하는 만큼만 빛을 쓰자는 것입니다.

그럼 "필요한 만큼"은 어떻게 정할까요. 기준은 사람의 눈입니다.
사람의 눈은 상황에 따라 요구하는 밝기가 다릅니다. 주변이 어두우면 화면이 조금만 밝아도 잘 보이고, 대낮에는 훨씬 밝아야 보입니다. 정면에서 볼 때와 비스듬히 볼 때, 가까이서 볼 때와 멀리서 볼 때도 다릅니다.
이런 시지각 특성을 수식으로 정리해 두면, 카메라와 조도 센서로 현재 상황을 읽어 "지금 이 조건에서 가독성이 유지되는 최소한의 밝기"를 계산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를 더했습니다. 화면 안의 콘텐츠도 다 같은 콘텐츠가 아닙니다. 꼭 전달해야 하는 핵심 정보와 곁들이는 보조 정보, 그리고 배경에 밝기를 차등해서 배분하면, 전체를 일괄로 줄이는 것보다 덜 어두워 보이면서 전력은 더 줄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짚어 둘 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 기술의 목표는 "무조건 어둡게"가 아닙니다. 역광이 강하게 드는 시간대에는 오히려 밝기를 올려야 가독성이 유지됩니다. 목표는 어디까지나 "필요한 만큼"이고, 절전은 그 결과로 따라오는 것입니다.
3. 개발 과정 — 카메라에게 시청자를 읽게 하기
원리가 정해졌으니, 이제 기계가 "지금 누가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알아내야 합니다.
전광판에 달린 카메라가 시청자의 얼굴을 찾아내고, 얼굴 크기로 거리를 어림하고, 고개의 방향으로 어느 쪽을 보고 있는지를 추정합니다. 여러 명이 보고 있으면 평균을 내고, 아무도 없으면 미리 정해 둔 기본값으로 돌아갑니다. 여기에 조도 센서가 주변 밝기를 더해 주면, 앞서 말한 "필요한 최소 밝기"가 실시간으로 계산됩니다.

개발 자체는 순조로운 편이었습니다. 진짜 이야기는 이 다음부터입니다. 만드는 것과 별개로, "이게 정말 전기를 아낀다"는 것을 공인된 방식으로 증명해야 했습니다.
4. 첫 번째 벽 — 아낀 전기를 잴 수가 없다
공인 시험기관의 출장 시험을 준비하면서 처음 계획한 측정 방식은 흔히 쓰는 구성이었습니다. 전선에 집게처럼 물리는 클램프 계측기로 전류를 재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계산해 보니 문제가 있었습니다. 시제품 전광판이 쓰는 전류가 애초에 아주 작았고, 절전 모드가 켜지면 더 작아집니다. 큰 전류용 클램프로 작은 전류를 재면 오차가 측정값을 삼켜 버립니다.
절전 기술을 만들었더니, 절전 때문에 측정이 어려워지는 웃지 못할 상황이었습니다.

저전류용 클램프로 한 번 계획을 고쳤고, 결국에는 클램프를 포기하고 전원선 사이에 계측기를 직접 끼워 넣는 직결식으로 한 번 더 갈아엎었습니다. 기술은 그대로인데, 그 효과를 담아낼 그릇을 찾는 데에 계측 방법론 문서 세 벌 분량의 시간이 들었습니다.
5. 두 번째 벽 — "어디까지가 전광판인가"
측정 방식이 정해지자 다음 질문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시스템에는 전광판 말고도 전기를 쓰는 것들이 있습니다. 시청자를 찍는 카메라, 조도 센서, 이들을 굴리는 제어용 컴퓨터. 이것들이 쓰는 전기는 소비전력에 포함해야 할까요?
정리한 논리는 이렇습니다. 검증하려는 대상은 "전광판의 발광 전력이 얼마나 줄었는가"이고, 카메라와 센서는 그 기술을 구현하기 위한 보조 설비입니다. 그래서 측정 경계를 전광판의 전원부로 명확히 긋고, 시험 전에 시험기관과 합의하는 절차를 밟기로 했습니다.
고민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절전형 전광판과 일반 전광판을 따로 놓고 비교하면, 그 차이가 알고리즘의 효과인지 기기 차이인지 구분되지 않습니다. 알고리즘의 효과가 온전히 드러나도록 비교 방식을 이렇게 설계했습니다.
구분 | 기준 모드 | 절전 모드 |
|---|---|---|
기기 | 동일한 전광판 한 대 | 동일한 전광판 한 대 |
콘텐츠 | 같은 영상 반복 재생 | 같은 영상 반복 재생 |
다른 점 | 적응형 제어 끔 | 적응형 제어 켬 |
같은 집에서 불을 다 켠 날과 빈 방의 불을 줄인 날의 전기 요금을 비교하는 것과 같습니다. 두 측정값의 차이는 오로지 알고리즘의 효과입니다. 여기에 예열 시간을 두고 모드마다 20분씩 여러 회차를 반복 측정해, 재현성까지 확인하는 절차를 더했습니다.
증명이란 결국 "누가 보아도 같은 결론에 도달하도록 조건을 정직하게 갖추는 일"이라는 것을 이 과정에서 배웠습니다.
6. 세 번째 벽 — "수식이 진짜로 돌아가는 걸 보여주세요"
절감률 숫자만으로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기기가 설계대로 센서 값을 받아 수식을 실시간으로 연산하고 있다는 증빙도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검증용 모드를 따로 만들었습니다. 조도 센서에서 들어오는 값과 그로부터 계산되는 모든 중간값·결과값을 매 순간 기록으로 남기고, 화면에도 실시간으로 띄워 누구든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개발할 때는 필요 없던 기능이지만, 증명하는 자리에서는 이것이 곧 언어가 됩니다.
7. 마치며 — 만드는 시간, 증명하는 시간
돌아보면 이번 개발의 절반은 기술을 만드는 일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그 기술을 의심의 여지 없이 보여줄 방법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계측 방식을 갈아엎고, 측정 경계를 긋고, 알고리즘의 효과가 온전히 드러나는 비교를 설계하고, 검증용 기록 장치를 따로 만들었습니다.
시작은 "보는 사람도 없는 새벽에 전광판이 최대 밝기여야 할까?"라는 작은 고민이었습니다. 빛을 아끼는 일은 기계가 알아서 하고, 사람은 화면에 담을 내용에만 집중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현재 공인 검증을 준비하며 전원 절감형 전광판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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